그 숟가락 좀 내려놓고 말할래?
이브 날 저녁에 오마카세 먹고 언니랑 나랑 딸기 타르트 한판을 한 조각만 남기고 다 먹었기 때문에 이미 배가 부른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크리스마스에 고향에 내려가 가족과 함께 식사를 했다. 성인 4명이서 회 한판 먹고 킹크랩 먹고 킹크랩 게딱지에 밥 비벼먹고 라면 끓여서 먹고 딸기 케이크 한판을 다 먹었다. 이게 2시간 만에 다 먹은 음식이다.
“아 배불러. 배 터질 것 같아”
언니가 숟가락으로 게딱지에 비빈 밥을 뜨면서 말했다. 친구랑 이전에 우스갯소리로 ‘한국인 특, 배부르다면서 숟가락 안놓음’이랬는데 솔직히 한국인 특은 아니고 인간의 특성이 그런 듯하다. 그거 아는가? 돼지도 과식은 안한다. 인간만 그렇게 배가 불러도 입에 먹을 걸 쑤셔넣는다. (이 얘기를 듣고 자존심이 상했다면 당신은 내 동지이다)
가끔 너무 먹을 때 정신 차리게 누가 욕 좀 해줬으면 좋겠다
개인의 의지 문제? 소비주의 문화로 인한 과식
입 터진 날이라고 해서 가끔은 과식해도 괜찮지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솔직히 가끔이 아니라 매일 더부룩한 상태였다. 그전날 배부르게 먹고, 위가 늘어나서 다음날 또 과식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월경 전에는 폭식도 자주 했는데 이런 날이 계속되면 정말 나 자신을 컨트롤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차라리 장삐쭈처럼 누가 옆에서 시원하게 욕해줘서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가 나약하기 때문에 남에게 욕을 들어서라도 과식을 멈추고 싶어한다. 그러니 살 빼라고 욕해달라는 영상에 격하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과식이 ‘의지의 문제’만 있을까? 과식을 단지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보통 식이장애, 비만 등의 경우 자기 관리가 안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컨트롤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과식의 심리학’에서는 현대의 소비주의 문화가 과식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소비주의 문화는 식품 소비를 자극한다. 미디어에서 광고하는 이것도 먹어보고 저것도 먹어보고, 영양 과잉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맛있는 것’을 계속 사제낀다. (책에서는 과식은 과소비라는 말까지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맛있는 것’은 보통 맵고, 짜고, 기름지고, 달고. 한 마디로 말하면 ‘자극적인’ 음식이다.
중독을 없애기 위해 작성한 도파민 디톡스 일지. 다른 건 다 참아도 맛있는 음식은 못 참았다.
음식 중독
식품 산업은 인공 감미료를 통해 강한 자극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당이 들어있는 음료수 같은 경우는 제로 칼로리여도 강한 단맛으로 도파민을 자극하고 허기는 지게 하면서 포만감은 불러일으키지 않으니 결국 더 많은 음식을 갈구하게 만든다. 자극적인 음식을 먹을 수록 음식을 더 찾게 된다.
그렇다면 음식에도 중독이 될 수 있을까? 보통 마약 중독, 게임 중독이라는 말은 있지만 음식 중독이라는 말은 없다. 하지만 책에 나온 실험 결과에 따르면, 쥐를 대상으로 마약과 설탕이 들어간 음식을 주었을 때 쥐가 설탕에 더 집착했다고 한다. 식품 산업에서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음식도 충분히 중독을 일으킬 만큼 강한 자극을 준다.
중독을 피하려면 자연 식품을 먹어야 한다. 자연 식품이란 자연에서 나온 것을 말한다. 사실 모든 음식 중에 자연에서 나오지 않은 게 없지 않은가? 라고 회귀해볼 수 있겠지만 좀 더 쉽게 구분하려면 ‘가공의 과정을 거쳤느냐’를 기준에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도넛이 나무에서 열리지는 않는다. 즉, 자연의 상태가 아닌 가공식품은 음식에 이상한 장난(계속해서 먹고 싶게 만드는 장난)을 했을 지도 모른다.
음식에 대한 자제력
책을 읽고 내가 과식을 하게 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때는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먹기는 했지만 변명을 하자면 정말 오랜만에 과식하는 날이었다. 책을 읽은 뒤로는 인위적인 단맛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다. 즐겨마시던 밀크티보다는 차를 마시고, 설탕이 들어간 게맛살 보다는 삶은 계란을 먹고, 초콜릿보다는 생과일을 먹었다. 솔직히 회사에 간식으로 나오는 빵과 도넛을 볼 때마다 아주 조금(이 아니라 격정적으로)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그치만 인위적인 단맛이 중독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자제력이 생겼다.
다이어트의 본질은 결국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인 만큼 빠지는 것이다. 뭘 더 먹어서 빠지는 건 없다. 디톡스 주스, 쉐이크, 시리얼 등 당류는 높지만 건강식품인척 위장하는 음식도 있다. 그런걸 위안삼아 먹다가 오히려 당때문에 더 허기가 져서, 먹던 시리얼에 우유 부어서 먹고 또 우유 남으면 거기다 시리얼 붓는 무한 굴레에 빠지거나 디톡스 주스로 파인애플, 바나나, 꿀 이것저것 단맛 섞어서 먹고 ‘아 오늘 디톡스 주스 먹었으니 쭈꾸미삼겹살을 시켜볼까’하다가는 그냥 건강한 돼지가 될 수 있다.
아무튼 소비주의 문화와 식품산업의 위선(건강식품인 척 자극적인 음식들)을 인지하고 나니 음식에 대한 자제력이 늘은 것 같다. ‘아 그만 먹어야하는데.. 이런 내 자신이 너무 싫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읽어보길 추천한다. 단순한 자기계발서, 심리학서라기 보다는 자본주의, 식품산업, 제약회사, 그리고 소비문화와 과식의 문제를 결부시켜 다각도에서 과식에 대한 문제를 조명한다. 때문에 미시적, 거시적 관점에서 동시에 과식에 대해 알게 되고 교양까지 쌓게 되는 일석이조의 책이다.
흠.. 뭐니뭐니해도 과식해도 좋을 만한 건 책밖에 없는 것 같다.
결론: 마음의 양식, 책을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