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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봉사일지#11] 동광모자원 어린이집 놀이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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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아주러 갔다가 애들한테 힐링 받고 옴
Created
2024/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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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
여기 등장하는 어린이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이름은 모두 가명,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함.

봉사 시작 전, 걱정되었던 점

이런저런 봉사활동(유기견, 집수리, 배식 등등) 다 해봤는데 유일하게 모자원 어린이집만 안가봐서 이번에 신청했다. 동광모자원은 어린이집 + 미혼모 시설이 붙어 있는 곳이다. 애들이랑 놀아주는 놀이 봉사, 시설 청소하는 시설 봉사가 나뉜다.
나는 놀이 봉사로 자원했다. 애들이랑 놀아준다는 게 기대가 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7살, 8짜리 조카들이랑 놀아줄 때도 30분 이상은 버거웠는데, 과연 애들이랑 4시간을 놀아줄 수 있을까? 이런 걱정. 오기 전에 다이소에서 비눗방울이라도 살 걸 하는 후회도 하고… 너무 빈 손으로 와서 어떻게 놀아줄 지 고민했다.

놀이 봉사 시작!

그런데 그럴 걱정이 필요 없었던 게, 애들이 놀이터에 도착하자마자 지들끼리 알아서 잘 놀았다. ㅋ. 그렇다고 뭐 안 놀아준 건 아니지만.
애들이랑 얼음땡도 하고, 공기 놀이도 하고, 축구도 했는데… 축구는 내가 공을 너무 못 차서 애들이 안 껴줬다. (오히려 좋아.)
진짜 안껴줌… ㅋ
매미 껍데기 잡는 아그
애들이 10명이라 선생님이 아이들을 한 명씩 맡았다. 나는 11살 짜리 나연이를 맡았는데, 잘 놀다가 건희라는 남자 아이가 음수대에서 물을 뿌리는 바람에 나연이가 울었다. 선생님이 건희 혼내주겠다고 겨우 달랬다. 알고 보니 건희는 이전에도 세 명의 여자 아이를 울렸던 나쁜 남자… 약속대로 혼은 내줬지만 나연이는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어린이집 과장님께 전부 일러 바쳤다. ㅋㅋㅋㅋ.
중량 치는 나연이.
내가 시킨 거 아님
나연이가 은근 맹랑한 구석이 있다. 원래 놀이터가 아니라 계곡에 가려고 했었다고 말하니, 계곡에 가려고 그렇게 입고 온 거예요? 버리려고 입고 온 거예요? 라고 한다든가(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거라 딱히 기분 나쁘진 않았다.), 나연이 앞에서 서은이를 챙기니 ‘선생님은 누구 선생님이에요?!’ 이렇게 되묻는다든가. 꼬맹이인데도 맹랑한 것이 당돌하고 귀여웠다. ㅎㅎ.
배고프다고 하니까 마지막 남은 사탕 나눠줌… 귀여웟…
나연이 나무늘보 인형
놀아준 건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 정이 들었다. 헤어질 때 나연이가 너무 아쉬워할까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나연이가 너무 쿨하게 ‘선생님 빠빠’하고 떠나서 서운했다.

놀아주면서 느낀 것

애들이 떠난 뒤에는 시설에서 버리는 책들을 밖에 내다 버리는 작업을 하고, 마지막에는 단체 사진도 찍었다. 유기견 봉사활동은 하고 나면 온 몸에 기운이 다 빠졌는데, 이번 봉사활동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애들도 알아서 즈그들끼리 잘 놀고, 말도 잘 듣고, 애교도 많았다. 순수하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에 오히려 기운을 얻어가는 것 같았다. 요새 너무 찌들어 있었는데 애들 덕분에 많이 힐링되었다.
하은이가 내 헤드셋 뺏어갔다 ㅎ
디즈니 캐릭터 같았던 여자 아그

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나

봉사활동이 끝나고, 저번 유기견 봉사활동 때 픽업해주셨던 대학교 선배님들 두 명, 그리고 나, 항해사, ESG 종사자 분 한 명 이렇게 다섯 명이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차 타고 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봉사활동 가서 수다 떨 때마다 꼭 나오는 질문.
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가.
나는 인생 노잼 시기에 법륜 스님 즉문즉설 듣다가 ‘인생이 심심하면 봉사활동이나 해라’라는 말을 듣고 시작하게 되었다. 별 뜻 없다. 그냥 주말에 심심하니까 봉사활동 가서 사람들 만나고 보람있는 일 하고, 감사나 칭찬 받으면 뿌듯해 하고 그 정도인 것 같다.
과장님한테 혼나는 봉사자 선생님들과 아이들
생각보다 많았던 책들
다른 분들도 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얘기해주셨다. 그중에서 항해사 분의 계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이분 나이가 27인데 고등학교 친구들은 다 취준 중이라 만나기만 하면, 이분이 밥도 사주고 우울한 얘기 들어주고 기분 풀어주고를 반복했단다. 그러다가 지쳐서 ‘내가 무슨, 친구들한테 봉사활동 하는 것도 아니고… 이럴 바엔 진짜 봉사활동을 해보자’라는 미친 개연성으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이분이 어린이집 봉사활동만 3번을 갔는데, 그 이유는 부하 직원들(선원들)이 답답해서 갈구다보니 너무 나쁜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고 한다. 아랫 사람들을 잘 다루는 법을 연습하고 싶어 어린이들이랑 놀아주는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일 못하는 건 괜찮은데 아무것도 안하려는 사람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던 대학교 선배가, 피가 거꾸로 솟게 하는 분을 거꾸로 세우면 되지 않느냐고 해서 또 아수라장 됨 ㅋㅋ. 진짜 너무 웃긴 조합들이었다.
원래는 유기견 봉사활동을 자주 가는데, 오늘 너무 재밌어서 다음에도 또 갈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에는 장난감 좀 챙겨서 애들한테 점수나 따야겠다. 인기 선생님이 되고 싶다.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