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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subTitle
다정한 허무주의
Created
202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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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스마트폰 하나로 지식, 편의, 오락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세상이다.
기술적으로 발달한 세상에서 부족함 없이 살고 있는데, 왜 지금 어른이 된 우리의 웃음은 흙으로 친구들과 소꿉놀이하던 어린 시절보다 해맑지 못한 걸까?
인터넷 세상 속에서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나만 행복하지 못한 느낌.
SNS, 유튜브, 넷플릭스. 인터넷의 여기저기에서 나의 욕망과 다른 사람의 욕망까지 모두 끌어와 베이글 위에 얹으면 에브리띵 베이글이 된다.
아이러니하다. 세상의 모든 것을 더했더니 공(空)이 된다는 것이.
나의 세상밖에 모르던 어린 시절, 정확히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다른 사람의 삶을 간접 경험해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나마 티비를 보거나 책으로 상상해보는 게 다였다. 그마저도 해리포터에 나오는 주인공이 되어서 마법을 쓴다는 말도 안되는 상상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통해 SNS를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나와 다른 사람들의 세상에 쉽게 접속할 수 있다. 조부 투바키가 다른 verse의 자신에게 접속하는 것처럼 우리도 인터넷을 통해 다른 verse의 나를 만날 수 있다. 내가 이 사람처럼 요리사가 된다면? 건물주가 된다면? 가수가 된다면?
처음 멀티버스를 접한 에블린은 웨이먼드와 결혼하지 않았던 자신의 세상을 보면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 자신의 세상이 아니다. 다른 선택을 한 나의 세상이다.
인터넷으로 접하는 다른 사람의 세상도 마찬가지이다. 나와 다른 환경에서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의 세상이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그 사람의 세상에 접속하고 내 이전의 선택들을 후회하고 자신을 책망한다. 그리고 그 세상을 부러워한다.
많은 사람의 세상을 접할 수록 우리는 조부 투바키처럼 변한다.
베이글 위에 모든 걸 올렸지. 내 모든 꿈과 희망, 옛날 성적표, 모든 종류의 개, 구인 광고, 참깨, 양귀비 씨, 소금. 이 세상 모든 걸 베이글 위에 올리면 이게 되거든. "전부 다 부질없다는 것" 기분 좋지않아? 다 부질없는 거면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괴로움과 죄책감이 사라지잖아
내가 가지지 못한 것, 이뤄내지 못한 것이 다 부질 없다는 것.
에브리띵 베이글을 접한 사람들은 모두 허무함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여우의 신포도처럼 얄팍한 허무주의는 어찌되든 상관 없는 삶을 파괴하려 한다.
멀티버스를 접하고 조부 투바키에게 설득된 에블린은 모든 것이 아무 쓸모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본인 스스로도 허무주의에 빠져 모든 verse의 세상을 파괴하려고 한다.
하지만 모든 verse의 웨이먼드는 다정함으로 에블린의 삐뚤어진 생각을 바로 잡아준다.
제발 다정해져요. 특히나 뭐가 뭔지 혼란스러울 땐.
요리사가 되든, 갑부가 되든, 가수가 되든 모든 것이 부질 없고, 어느 세상에선 인간도 아닌 그저 돌멩이인 하찮은 존재인 나를 에브리띵 베이글에서 꺼내줄 수 있는 것은 다정함이다.
다 부질 없고 쓸모 없다면서 에브리띵 베이글에 빨려들어가는 조이를 다시 밖으로 끌어낸 것은 엄마의 다정함, 아빠의 다정함, 할아버지의 다정함이었다.
‘이 넓은 세상에서 나는 그저 하찮은 존재일 뿐이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자신에게, 모두가 바삐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제자리 걸음하며 혼란스러워 하는 자신을 허무주의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은 다정함 뿐이다.
‘하찮아도 괜찮다.’
엉망이라도 괜찮아요. 그 부족함을 메워줄 다정하고 인내심 많고 너그러운 사람을 우주가 보내 줄 테니까.
Evelyn: Wait. You are getting fat. And you never call me even though we have a family plan. And it's free. You only visit when you need something. And you got a tattoo and I don't care if it's supposed to represent our family. You know I hate tattoos. And of all the places I could be, why would I want to be here with you? Yes, you're right. It doesn't make sense. Waymond: Evelyn, stop. That's enough! Joy: Let her finish! Evelyn: Maybe it's like you said. Maybe there is something out there, some new discovery that will make us feel like even smaller pieces of shit. Something that explains why you still went looking for me through all of this noise. And why, no matter what, I still want to be here with you. I will always, always, want to be here with you. Joy: So what? You're just gonna ignore everything else? You could be anything, anywhere. Why not go somewhere where your daughter is more than just this? Here, all we get are a few specks of time where any of this actually makes any sense. Evelyn: Then I will cherish these few specks of time.
허무주의에 빠지더라도 사람은 계속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게 부질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다정함이 필요한 게 아닐까?
조이가 허무주의에 빠지고 세상이 부질 없다는 것을 깨달았음에도, 모든 소음을 뚫고 자신을 이해해 줄 단 한 명의 에블린을 찾아 멀티버스를 헤맨 이유도, 내가 이렇게 못나고 하찮지만 나를 이해해주는 누군가의 다정함이 필요해서가 아니였을까?
평소 잘 울지 않던 사람도 이 영화를 보고 울었다고 하는 이유는, 그리고 나도 눈물이 났던 이유는 사실 이런 다정한 말들이 우리에게 필요해서가 아니였을까 생각한다.
모두가 관심은 원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만 생각하는 극단적인 자기중심적인 사회에서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받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나 못난 내 모습은 더더욱. 그래서 SNS에 더 멋지고 행복한 자신의 모습으로 치장한다.
에블린이 조이에게 말했듯이, ‘네가 살 찌고 가족 행사가 있을 때 전화도 안하고 필요한 게 있을 때만 찾는 이기적이고 못난 사람일지라도 전부 다 부질 없어도 여전히, 그리고 항상 너와 함께 있고 싶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서, 자기중심적인 사회에서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영화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다정함이 세상을 이긴다.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이 할 수 있는 극단적인 선택은 ‘모든 것을 파괴하거나’, ‘모든 것을 품거나’이다. 에브리띵 베이글에 빠졌다면 세상에 다정함을 베풀어보자. 구글리 아이로 표현된, 제3의 눈을 뜬 에블린이 허무주의에 빠진 에브리띵 베이글교 신도들에게 다정함을 베풀었던 것처럼. 다정함을 느낀 베이글교 신도들, 스스로를 하찮은 존재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전 아내의 향수, 사랑하는 사람과의 키스와 같이 작은 것에도 행복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다정함으로 어제의 적이었던 디어드리와도 따뜻한 포옹을 할 수 있는 verse를 만든다.
다정함을 스스로에게 베풀면 스스로를 구원하게 된다. ‘엉망이라도 괜찮아. 그 부족함을 메워줄 다정하고 인내심 많고 너그러운 사람을 우주가 보내 줄 테니까.’ 에블린 대사 속 우주가 보내주는 그 사람이 찾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은 안해도 된다. 우주는 멀티버스이고 우주에서 온 그 너그러운 사람은 또 다른 세상 속의 나 자신이다. 모든 것을 깨닫고 다정함으로 세상을 대하려는 나 자신이 스스로를 구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