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고른 이유
회사 동료분과 거의 즉흥적으로 제주도 여행을 떠난 둘째날, 우리는 뭘 할까 고민하다가 책방에서 책을 사서 카페에서 읽기로 했다. 우리는 제주시 관덕정 근처 골목의 독립책방이라는 곳으로 갔다. 일반 서점과는 달리 책방 주인의 취향과 감성이 묻어나는 책들이 많았다.
서점에서는 인디밴드나 아이유가 부르는 서정적인 노래들이 나오고 있었는데, 그 노래들이 꽤 많이 바뀌었을 만큼 나는 책을 신중히 고르고 골랐다. 읽고 싶었던 책이 많았지만 그 중 두 권을 골랐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책 '열 문장 쓰는 법'이었다.
아직 읽고 있는 작법서가 있는 데도 또 비슷한 책을 산 이유는 어제 쓴 버킷리스트에 '책 쓰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쓰고 싶다면서 소설의 첫 문장도 쓰지 못하는 내가 열 문장을 제대로 쓸 수 있다면 나중에는 백 문장을 쓰고 천 문장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나는 마음에 끌리는 문장들에 밑줄을 쳐가며 읽었다. 2백 장도 안되는 얇은 책이지만 글쓰기 초보자들이 쉽게 놓치는 점들을 야무지게 담아내었다.
한국 사람이 한국어로 글을 잘 쓰는 방법
한국 사람이 한국어로 글을 쓰는데 못 쓸 수가 있을까. 못 쓸 수 있다. 누구나 한국어로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잘' 쓰는 것은 어렵다. 책의 예시를 인용하면, 우리는 뉴스에서 아나운서가 말을 참 자연스럽고 조리있게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일상에서 아나운서처럼 말한다면 어색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잘 읽히는 글은 일상의 언어와 다르다. 비문이 없어야 하고 문장의 흐름을 방해하는 접속 부사(그리고, 그래서, 그런데)나 지시대명사(이, 그, 저)의 사용을 되도록이면 줄여야 한다.
고등학교 때도 접속 부사를 많이 써서 국어선생님께 지적 받은 적이 있는 데도 나는 접속 부사와 지시대명사를 즐겨 썼다. 독자들이 글을 쉽게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해 자주 사용했는데 책에서 접속 부사가 난무하는 문장을 보여주니 내 글이 생각나면서 확 부끄러워졌다. 이 글에서도 최대한 안쓰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내 예전 다른 글보다도 훨씬 흐름이 부드러워진 게 느껴진다. 나만 느껴지나? 내 글을 읽는 게 나밖에 없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한 문장에서 열 문장으로
문장의 기본을 지킬 수 있다면 이번에는 길게 써보자. 짧게 쓰는 게 유행이라지만 처음부터 간결하고 힘찬 문체를 가지는 것은 어렵다. 책에서 소개하는 가장 첫번째 글쓰기 연습은 자기 소개를 아주 길게 써보는 것이다. '나는 누구고 무슨 일이 있었는데 나는 이렇게 느꼈고 그래서 지금은 이렇다.'와 같은 문장을 자연스럽게 한 문장으로 쓴다. 한 문장으로 쓰면 당연히 읽기 어렵겠지 싶었는데 작가의 한 문장을 보니 아주 긴 호흡으로 써도 잘 짜여진 글은 쉽게 읽히는 것을 깨달았다.
한 문장이 잘 쓰여진다면 그 다음은 문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끊어본다. 끊는 과정에서 문장의 순서가 바뀌거나 새로운 내용이 들어갈 수 있다. 만약 수정을 덜 거친다면 한 문장의 완성도가 아주 높았다고 볼 수 있다.
책 제목의 '열 문장'은 열 개의 문장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나열된 문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주 긴 한 문장을 쓰고 토막내보고 자연스럽게 연결하면서 문장의 열을 완성시켜 나간다. 한 문장을 길게 써보기도 하고, 짧게 써보기도 하면서 글의 시간을 통제한다. 책을 읽으며 글쓰기는 공간을 채우는 게 아니라 '시간을 채우는 작업'이라는 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작가는 글을 통해 독자가 읽는 글의 시간을 흐르게도 할 수 있고 멈추게도 할 수 있다. 글의 시간을 통제하려면 문장의 호흡을 자연스럽게 늘이거나 줄일 수 있어야 한다.
기본을 지켜서 쓰는 사람으로
글쓰기의 공중부양, 책 한 번 써봅시다, 글쓰기 공작소 등 다른 작법서에도 글쓰기의 기본에 대해서 많은 언급을 한다. 너무 많이 쓰여 의미가 퇴색된 어휘는 쓰지 말라,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되게 문장을 구사하라, 화자가 되어 글을 써라 등 글쓰기에도 지켜야할 것들이 많다.
이 책 역시 글쓰기의 기본을 강조하면서 스스로 연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어 좋았다. 책을 읽기 전에는 짧고 간결하게 써야만 의미 전달이 분명하고 독자가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맹목적인 간결함은 오히려 글의 흐름을 해치는 것 같다.
그전에는 짧게 쓰기 위해 글쓰기에 주저함이 있었다면 지금은 애초에 길게 써도 괜찮다고 생각하니 빠르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책이 얇다고 해서 안에 들어있는 내용도 가벼운 것은 아니다. 책에서 알려준 것만 잘 실천해도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잘 쓰는 단계까지 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