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류광석 시집 - 노랑과 빨강

발행일
2018/09/30
Tags
교양
문학
[하고 싶은 ]
마음 속에서 꺼내
당신께 드리려는데
입안에서 맴돌기만 하는 그 말.
순결하기에
두려움 없어야 하는데도
나오지조차 못하는 그 말.
눈 먼 화가의 집념처럼
곱게 그려 보내려 하나
화폭에 눈물만 적시게 하는 그 말.
[예쁜 병아리에게]
거기가 편한 곳인데
온 힘 다해 껍질을 쪼는구나
이 잘난 세상 와서 뭘 보려고.
아서라
나오지 마라
네가 그리는 좋은 세상이 아니다
너를 기쁘게 할 그런 세상이 아니다.
그냥 거이 있거라.
괜히 왔노라 후회할 세상이니 오지 말고
거기 있어라
깨뜨리지 말고 거기 있어라
지금이 행복이니 나오지 말거라.
[가버린 ]
잊음에는
미움이
그리움보다 빠르다 했는데
가슴 저미고 꽉 차
미움이 들어오기조차 못하네.
[착각]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이 마음을 지켜주어
하나같아야 합니다.
그러나
글이 오히려
여러 개의 마음을 만듭니다.
사람들은 글을 읽고
저마다 자기를 향한 손짓이라고
감격해합니다.
[눈물]
눈물을 보았습니다.
내가 흘리는 눈물은
나만이 갖는 의미가 있는데도
보는 이들은 자기 가슴에
나의 눈물을 다르게 담습니다.
이별의 눈물을 사랑의 눈물로,
양심의 눈물을 환희의 눈물로,
후회의 눈물을 애정의 눈물로,
더러는
잃어버린 발의 눈물을
팔의 눈물이라고 우기기도 합니다.
오늘 흘린 눈물은 그저 흘려 본
보통의 눈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런 몸부림도 상처도 없는
하얀 눈물 말입니다.
아니면,
기차와 같은 눈물이었으면 합니다.
비록 길지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차처럼 말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가슴의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
설사 그 사람이
뒤돌아보지 않고 허무를 쫓더라도
훨훨 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나로 인해 단 한번이라도
마음에 눈물이 고이게 된다면
또 다른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함께 만든 아름다운 추억만은
소중하게 간직해야 한다.
그리고
그가 있었던 자리가 텅 비어 있다 해도
내 가슴이 그를 알아보지 못할 때까지
그이만을 생각하고
사랑노래를 불러야 한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훨훨 날 수 있게 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