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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승의 하루 - 동자승 이찬

published
2022/12/11
pinned
subtitle
동자승의 하루에서 얻는 깨달음과 힐링
장르
웹툰
author
동자승 이찬
동자승의 하루는 ‘동자승 이찬’의 하루에서 얻는 깨달음과 위로를 주는 웹툰이다. 동자승 이찬의 순수한 질문과 사부님의 지혜로운 대답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꽃이 좋아
꽃나무를 가진 노인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아름다운 꽃을 보고 누구나 그 노인에게 꽃을 팔라고 하지만 노인은 팔지 않는다. 사람들이 원하는 데 왜 팔지 않냐는 동자승의 물음에 노인은 사람들이 원하는 건 꽃이 아니라 ‘꽃이 주는 즐거움’을 좋아할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누군가 꺾은 꽃 한송이를 동자승에게 쥐어주며 사람들은 정작 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동자승은 꽃을 안타깝게 보다가 땅에 심으며 ‘예쁜 꽃아, 너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널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한테만 보여줘’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싶은 건 누구나 갖고 있는 욕망이기도 하다. 그들을 위해 가장 예쁘고 아름답게 자신을 꾸미고 포장해보아도 사람들은 아름다움이 주는 즐거움을 좋아할 뿐이지, 정작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모든 사람에게 맞춰줄 필요도, 예뻐보이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예전에 법륜스님 즉문즉설 중에 기억나는 게 있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은 머슴이나 노예가 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말씀하신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가끔 부자들이 오히려 편하게 입고 다니고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걸 보면 이해가 된다. 그들은 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으니까.
그러니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기 보다는 정말 나를 아껴주는 사람에게 더 아름다운 모습(내면이든 외면이든)을 보여주는 게 맞는 것 같다. 특히 가족들. 오랜 세월 동안 많이 봐왔기 때문에 익숙해져서 소중함을 잃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나를 가장 아껴주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오히려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존보 동자승이 칼춤을 추며 무술을 연마하는 아름다운 여인을 발견한다. 사부님에게 무술만 연마하다가 시집을 못가게 되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한다. 이에 사부님은 ‘못 만나면 그만이지.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지 못하면, 그 사람을 좋아할 자격이 없는 거란다’라고 말한다.
*지존보: 서유기-선리기연의 주인공 이름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지 못하면 그 사람을 좋아할 자격이 없다는 말은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며 해야할 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자신은 상대방이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엄마와 최근에 일본 여행을 하면서 단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언니와 아빠에게 서운했던 이야기를 하셨다. 언니가 조금 더 사근사근하게 대해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아빠가 좀 더 당신의 말을 툴툴대지 않고 잘 들어주었으면 한다고 하셨다. 한편 이전에 언니와 단둘이 얘기했을 때 언니도 엄마에게 바라는 게 있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의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모습이 있어도 상대방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내 마음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건 상대방이 아니라 내가 해야할 일이다.
나 역시도 주위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이 많다. 하지만 상대방은 바뀌지 않고 기대해봤자 실망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남을 바꾸려하기 보다는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 남들을 사랑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하자.
관련된 영상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즐겨듣는다. 즉문즉설에는 지혜가 있다. 살면서 내 뜻대로 안되는 게 많아 고통스러울 때,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스님은 사람들의 고민에 지혜로운 대답을 해주신다. 지혜로운 대답은 무겁고 심각하게 생각했던 고민을 가볍고 단순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그래서 나는 종교를 믿지 않지만, 불교는 좋아한다. 종교로서가 아닌 철학으로서 좋아한다. 애쓰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게 살아가기 위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 좋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꼭 이뤄야하는 목표가 있다면 어떻게든 이뤄내야만 했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괴로웠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많이 다그쳤다.
지금은 한 달, 하루 단위로 목표나 계획을 세우지 않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간다. 목표가 없다고 해서 나쁜 인생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단기적인 목표를 이루고 나면 허망함이 따라오는 경우가 많았다. 고등학교 내내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원하는 대학에 가고 싶어 간절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막상 대학교를 가고 나니 내가 인생에서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고민이 됐다. 갈피를 잃은 기분이었다. 다이어트를 해서 원하는 몸무게가 되었을 때도, 내가 바라던 연애를 했을 때도, 고시원에서 벗어나 가장 만족스러운 집을 구하게 됐을 때에도 이루고 난 뒤에는 항상 끝 없이 바라는 게 생겼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고, 손에 닿는 순간 사라지는 신기루 같다. 불교에서 사람의 욕망은 고통의 근원이다. 바라는 게 있지만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고통스러워진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면 고통스럽지 않은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즉문즉설을 대학생 때부터 계속 들어와서 이젠 거의 세뇌되다시피 했지만서도, 여전히 누군가와 비교하고 내게 없는 것을 욕망하고, 욕심을 부리게 된다. 그나마 나아진 것은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스님의 가르침을 떠올리고 다시 마음을 다독일 수 있게 된 정도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어리석다.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헛된 욕심 부리지 않고 스님처럼 지혜롭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