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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1, 2(스포주의) - 베르나르 베르베르

published
202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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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title
이종 간 소통은 가능할까?
장르
소설
교양
author
베르나르 베르베르
내가 주로 책을 읽는 리디북스와 우리 회사가 제휴를 맺어 리디셀렉트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덕분에 내 서재가 아주 풍부해졌다. 읽고 싶은 책은 마음대로 서재에 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고양이였다.
소설의 도입부는 암고양이 바스테트가 소통을 한답시고 쥐를 농간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이 책의 주제는 '소통'이다. 특히 '이종異種 간의 소통'을 다룬다. 이집트의 고양이 여신의 이름을 딴 바스테트와 고대 그리스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피타고라스가 소설의 주인공이다. 주인공들의 이름이 바스테트와 피타고라스인 이유는 이 두 고양이가 이종을 엮어주기 때문이다.
바스테트는 여신으로서 영적인 세계에서 인간과 소통하고, 피타고라스는 지식의 세계에서 인간과 소통한다. 고양이 바스테트는 고양이 샤먼으로서 고양이로부터 인간으로의 소통을 담당하고, 고양이 피타고라스는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인간으로부터 지식을 전수 받아 고양이에게 전하는 역할을 한다. 피타고라스로부터 얻은 지식과 이종 간 소통의 경험(쥐와 인간, 고양이의 전투. 싸움도 소통이다)을 기록하기 위해 바스테트는 인간 샤먼인 파트리샤의 도움을 받아 이 책을 쓰게 된다.
피타고라스는 집사 소피의 실험으로 인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USB 단자를 머리에 심게 된다. 이 USB 단자에 케이블을 연결하면 피타고라스는 인터넷에 접속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올해 초에 일론 머스크의 뉴럴 링크에서 생각만으로 게임을 하는 원숭이를 공개했다. 뉴럴 링크의 최종 목표는 언제든 인간이 기계, 인공지능과 연결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돼지나 원숭이의 뇌에 칩을 심어 실험을 하고 있는데, 나는 이 실험을 통해 동물들과의 소통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포유류의 대뇌 변연계에 칩을 심어서 신경 패턴을 익히면 지금 내 반려동물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고양이의 언어를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감정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 TV동물농장에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하이디'가 출연해 반려동물과 주인의 소통을 도왔던 에피소드들이 생각난다. 동물들도 감정을 느끼고, 오해로 인해 주인과 갈등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들도 많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외면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작가의 마지막 추신에서 한 질문이 나온다.
만약 여러분보다 덩치가 다섯 배는 크고 소통도 불가능한 존재가 여러분을 마음대로 다룬다면, 문손잡이가 닿지 않는 방에 여러분을 가두고 재료를 알 수도 없는 음식을 기분 내키는 대로 준다면, 어떤 심정일까요?
심지어 소설 속에서 집사 나탈리는 바스테트가 낳은 새끼 고양이들을 변기에 넣어 없애버린다. 동물 학대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성대 제거 수술이나 땅콩 제거 수술 등을 하여 동물의 본능을 제한하기도 한다. 나의 반려동물과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내 반려동물이 나를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우울해한다면 나는 매우 슬플 것이다.
사람과 동물이 같이 살기 위해서 동물은 자신의 본능을 포기해야 한다. 생존하기 위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대신. 하지만 애초에 분양되는 동물들에게 그러한 선택권이 있었을까? 나도 고향집에서 강아지들을 키우고 있어서 작가의 질문을 받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산책도 마음대로 못나가고 맨날 목줄에 묶여있어야 한다면 나는 탈출하거나 자살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 행복하지만, 내 반려동물의 삶도 행복할까? 독립적인 정신을 가진 생명체를 나의 삶에 종속시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닐까? 자신감 넘치고 독립적이고 강인한 고양이 바스테트를 보면서 이 고양이가 이렇게 생기 넘치는 캐릭터라고 느낀 이유는 집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고양이 군대를 만들고 쥐와 싸우고 인간과 소통하려는 주체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고양이는 없겠지만, 어쨌든 내셔널 지오그래피에서 본능대로 살아가는 동물을 보면 자유롭고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는가. 어떤 삶이 동물에게 더 행복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 자체는 중요한 것 같다.
처음에는 고양이가 주인공인 귀여운 소설인 줄만 알았건만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답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다른 종과의 소통이 가능하다면? 지구의 주인이 바뀐다면? 고양이들이 문명을 이룬다면? 내 반려동물은 과연 행복할까? 사실 생각보다는 상상에 가깝다. 이 작가는 항상 상상력을 자극한다. 나같이 망상을 즐기는 사람에게 좋은 화두를 던져주는 작가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처럼 소설에 몰입하며 읽었다. 이번 소설도 만족스러웠다.
번외
피타고라스는 제 3의 눈으로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인터넷에 접속한다. 이때 구글링을 하는데, 구글의 데이터 센터는 전시 상황에도 끄떡 없을까? 하긴 넷플릭스도 카오스 몽키라는 팀을 만들어서 매번 테스트한다는데 구글이 안될 리 없겠지..? 핵이라도 떨어지면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