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과 먹구름이 공존하는 하루였다. 햇빛이 비추는 길거리에 여우비가 내렸다.
비는 내렸지만 언뜻언뜻 보이는 파란 하늘과 흰 구름 때문에 기분이 가라앉지는 않았다.
경기도 광주의 한사랑마을로 가는 길
봉사자 모두 아침 8시에 딱 모여 역삼역에서 버스를 타고 경기도 광주의 한사랑마을로 이동했다.
버스를 타서 그런가 어렸을 적 수학여행을 가는 그런 설레임도 있었다.
앞자리에 앉은 의성님과 퇴사 후의 계획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떠들기도 했다.
낯을 가리는 편이지만 이미 이전 봉사활동에서도 함께 한 분이라 이번에는 좀 편한 느낌이었다.
떠드는 것도 잠시, 서울을 벗어나자 다들 조용해졌고 각자 핸드폰을 보거나 잠에 들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졸릴 법도 한데, 나는 버스 탈 때 창 밖을 보면서 잡 생각을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자진 못 했다.
버스 창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바깥 풍경이 빠르게 스쳐지나가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창문에 딱 달라붙어 미세한 진동을 하고 있는 물방울들을 보았다.
그것들을 자세히 관찰하다가 그 안에 비친 바깥 풍경이 거꾸로 뒤집혀있다는 걸 알게 됐다.
수 백개의 물방울 안에 뒤집힌 다른 세상들. SF를 좋아해서인지 멀티 유니버스가 생각났다.
빗방울이 땅에 튀어올라 여러 개의 물방울로 나뉘어지는 것처럼 하나의 사건으로 여러 개의 평행세계로 또 나뉘어지는 상상을 하며 버스 안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건물과 팻말이 보였다.
버스에서 주로 본 풍경은 공장들과 밭이었는데, 한사랑마을로 들어오니 넓은 주차장 안에 꽉 차 있는 차들이 보였다.
이 사람들 모두 복지사, 봉사자들인 걸까?
그런 생각과 함께, 큰 건물들을 보고 한사랑마을의 규모가 꽤 크다는 걸 체감하게 됐다.
봉사 전 한 컷!
토스피스 유니폼으로 환복한 뒤, 건물 1층 로비에서 현수막을 들고 다같이 사진을 찍었다.
수줍게 웃고 있는 내 얼굴 아래로 시선을 내리다보니 빵꾸 난 양말이 눈에 띄었다.
슬리퍼를 제공하지 않아서 양말을 신고가야 했는데 하필이면 구멍 난 양말을 신고 간 것이다.
봉사활동 내내 양말 때문에 창피했지만, 퀸카로 살아남는 법의 레지나처럼 당당해지려고 노력했다.
마침 양쪽 엄지발가락에 대칭으로 구멍이 뚫려있어서, 일부러 그런 것 같은 간지가 있기도 했다.
단체사진 내 발 뒤에는 발가락 양말이 보이는데, 덕원님의 발가락 양말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양말을 보고 웃으며 밸런스 게임을 했다.
구멍 난 양말 신기 vs 발가락 양말 신기
그 와중에 각자 자기 양말을 선택했다.
사진을 찍은 뒤에는 봉사활동 교육을 들었다.
한사랑마을이 어떤 곳인지, 이곳에 계신 이용자분들은 어떤 분이고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대해드려야 하는지, 휠체어는 어떻게 조작하는지 등등 자세하게 알려주셨다. 봉사활동 교육실 한 면에는 중증 장애인분들에 대한 설명과, 어떤 자세로 봉사하면 좋은지 써 있었다.
이곳에는 73명의 이용자분들이 계시고, 중증 장애 중에서도 고도의 중증 장애를 겪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어린이재단이지만 퇴소할 나이가 되어서도, 고도 중증 장애인을 받아주는 시설이 없어서 계속 머무르다 보니 40대가 되신 분들도 있다고 한다.
한사랑마을은 설립 이래로 이분들을 계속 책임지고 돌봐줄 뿐 아니라, 자립 및 재활을 돕는다고도 한다. 시설 게시판 중에는 자립하여 정부 지원 아파트를 얻어 시설 밖에서 살게 된 장애인 분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리고 이분들이 겪고 계신 뇌병변 장애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셨다. 뇌병변 장애는 뇌 손상 때문에 의사소통 장애 및 상체 또는 하체 마비 등을 겪는다. 교육자분은 의사소통은 안되지만 장애인분들도 우리들처럼 똑같은 욕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 교육 및 문화 활동들을 지원한다고 말씀하셨다. PPT에서 인상깊었던 문구는 ‘우리는 장애인 분들의 의견을 존중합니다’였다.
마음으로는 ‘최선을 다해 배려해드려야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가 과연 그 분들께 잘해드릴 수 있을 지가 걱정되었다. 장애인 분들은 가끔씩 봐왔지만 실제로 내가 생활을 도와드린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걱정을 안고 장애인 분들의 생활실로 향했다.
자원봉사자실에서 나오니 생활실 쪽에서 고성과 무언가를 손바닥으로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무서운 마음도 들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누군가의 일상에 무서움을 느낀다는 게 무례함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생활실을 지나며 장애인분들을 만나뵐 수 있었다. 그분들은 우리를 보며 소리쳤다. 문장도 단어도 아닌 소리였다. 우리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우리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고 싶으시단 걸 느꼈다.
인솔자분께서 말씀하시길, 장애인분들은 평소에 봐온 사람들만 계속 봐오다보니 봉사자 분들이 오시면 새로운 얼굴을 봐서 좋아하신다고 들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많이 흥분하시게 되어 소리지르거나 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 얘기를 들으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소통 방법은 조금 다르지만 이용자분들이 우리를 반기신다는 얘기를 듣고 기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와준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반가운 마음이 들게 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다.
20명의 봉사자들이 각자 랜덤으로 생활실에 배정되었다. 우연히도 나랑 덕원님은 같은 생활실에 배정되었다. 그곳에는 이용자 네 분이 생활하고 계셨다. 강호님, 재주님, 시연님, 강수님… 신기하게도 아직 그 이름들이 기억난다. 생활실 창가 쪽에 있던 환하게 웃고 있는 이용자분들의 사진들도.
우리가 맡은 임무는 11시까지 한 명씩 휠체어로 산책을 시켜드리고, 11시 10분에 식사 보조를 해드리는 것이었다.휠체어를 다뤄본 적이 없어 걱정이 되었지만 생각보다 조작법이 어렵지 않아 괜찮았다. 나는 강수님과, 덕원님은 재주님과 산책을 하게 되었다. 인솔자분께서는 대화는 통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용자분들께 계속 말을 걸어주면 좋아하실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처음에는 1, 2층 건물 내부를 돌다가 몇 분이 지나자 날씨가 맑게 개어 햇빛이 비추는 걸 보았다. 이용자분들과 함께 즐거운 산책 시간을 보내라는 하늘의 계시였을까? 마침 이렇게도 날이 맑게 개는 것이 신기했다. 나는 이 얘기를 강수님께 하면서 건물 밖으로 나갔다.
건물 밖에는 작은 정원, 그리고 산 옆으로 쭉 나 있는 도로가 있었다. 휠체어라 경사진 곳으로 갈 수 없어 건물 주변만 맴돌아야 했지만 최대한 강수님께 많은 풍경을 보여드리고 싶어 이쪽 저쪽으로 이동했다. 아, 그리고 이렇게 햇빛이 강한 날에는 이용자 분들이 눈이 부시지 않도록 햇빛을 등지고 이동해야 한다. 봉사의 가장 기초는 ‘배려’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렇게 강수님에게 말도 걸고, 꽃 얘기 나무 얘기도 하고, 노래도 불러드렸다. 아기상어, 금잔디, 올챙이 노래들을 들려드렸는데 좋아하실 지는 모르겠다. 동요 말고 아이돌 노래 불러드릴 걸. 지금에서야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여기는 건물 뒷편. 덕원님이 재주님과 같이 산책을 하고 계시다. 나중에서야 재주님과 어떤 얘기를 했냐고 물었는데, 덕원님은 자기 군생활 얘기를 들려드렸다고 했다. 덕원님은 병특이시고 최근에 3주 동안 훈련소를 다녀오셨다. 재주님이 그 얘기를 좋아했으려나 의문이 들었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마다 재주님이 화를 내신 걸 보면 덕원님과의 산책이 분명 좋으셨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건물 뒷편에서, 떨어진 수국 한 뭉텅이를 발견했다. 시들지 않은 수국이 예쁘기도 하고, 강수님께 뭔가 선물을 드리고 싶은 마음에 수국 한 송이를 따서 휠체어 판 위에 올려드렸다. 강수님은 수국 한 송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셨다. 식사할 때 복지사 분이 꽃송이를 보고는 강수님의 귀에 꽂아드렸다. 줄기가 짧아 금세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강수님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다.
식사 시간이 되어 이용자분들과 함께 건물로 들어가는 의성님과 덕원님.
식사 시간에는 밥을 먹여드리는 게 전부였다. 다만 턱받이를 하고 난 뒤 식사가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다들 밥 때문에 흥분하셨기 때문이다. 얼른 밥을 드리고 싶었다. 너무 흥분하셔서 같이 박수 치면서 ‘참읍시다~’, ‘기다립시다~’라는 노래를 불러드렸다. 하지만 재주님의 화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나중엔 식사를 드렸는데도 거부를 하셔서 당황스러웠지만 결국 다 드시기는 했다.
나는 시연님의 식사를 도와드렸는데 이 생활실 내에 유일하게 씹어드실 수 있는 분이였다. 이용자 분들께 밥을 드릴 때에는 ‘아~’하면서 드리는 게 아니라 밥 그릇을 턱에 받치고 숟가락을 입 앞에 대어야 입을 열어주신다. 계속 ‘아~’라는 말만 하다가, 이 얘기를 듣고서야 밥을 잘 드릴 수 있었다. 너무 내 기준에서 생각했나보다. 어쨌든 꼭꼭 잘 씹어드시는 시연님의 모습을 보니 나 역시 뿌듯했다. 결국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깨끗이 다 드셨다. 박수 치면서 만족스러워하시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점심 식사 후 시간이 남아서 11시 50분까지 강호님의 산책을 도와드렸다. 등이 아파서 오래 못앉아 계시는 분이지만 잠깐의 산책이라면 괜찮을 거라며 인솔자분께서 산책을 부탁하셨다. 나는 기꺼이 산책을 함께 했다. 이용자 분들의 인원에 비해 인력이 부족한 지 이용자 분들이 모두 하루에 한번 씩 산책을 나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면서 산책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답답하실까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현실에 대해 화를 낼 사람도 있겠지만… 그분들의 입장에서 설명해보자면, 한사랑마을은 의료시설이 아니라 생활시설이다. 복지사 분들은 산책, 식사 보조, 목욕, 청소, 화장실, 취침 등등 이용자분들의 생활 전반을 책임지신다. 73명과 모두 산책하려면 적어도 그만한 인원이 산책을 함께 해야하는데 식사는 누가 준비하고 목욕은 누가 준비할까. 또, 앞뜰과 뒤뜰이 몇 십명이 휠체어를 타고 산책할 만큼 그렇게 넓지는 않다. 그리고 이용자분들의 팔 다리를 보면 전부 뼈가 다 보일 정도로 앙상하다. 그 중에는 오래 앉아있기 힘든 분들고 계셔서 산책하기 힘드실 수도 있다. 애초에 이런 현실을 지적하기 전에 가족끼리 봉사라도 와서 복지사분들을 거들어주는 게 이용자분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짧은 봉사활동 시간이 끝나고 생활실의 이용자분들께 인사를 드렸다.
다들 자원봉사자실에 모여서 설문지를 작성하고 소감을 나눴다. 나는 부끄러움이 많아서 남들 앞에서 내 소감을 얘기하지 못했다. 내 소감은 이렇다.
나는 오늘 이용자분들과 함께 하며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도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떤 장애를 겪고 있든 간에 우리는 다 똑같은 인간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들뜨고, 밖에 나가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고, 맛있는 밥을 보면 빨리 먹고 싶고, 사람과 헤어지면 아쉬워 하는 것. 말하지 않아도 그분들의 행동과 표정으로 느낄 수 있었다.
봉사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새로운 취미생활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직접 장애인 분들을 도와보니 봉사란 ‘남을 위하는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SNS 속에서 잘나가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하며 우월감과 열등감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느끼는 사회, 남이 아니라 나만 생각하면서 사는 세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남을 위한 활동을 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인터넷, 수많은 디스플레이 광고 속에서는 남보다 내가 더 잘되기 위해 살라는 메시지들이 가득하다. 그래야 행복해지는 것 마냥. 하지만 봉사를 하다보면 타인을 위함으로써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