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꿈"
초등학교 5학년, 반 친구들 앞에서 장래 희망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말했던 꿈은 '작가'였다. 그나마 잘하는 게 글쓰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장래 희망은 몇 번씩 바뀌어왔지만 매년 버킷리스트를 쓸 때 '책 출간'은 빠지지 않았다. 말은 쉽지만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주제로 글을 쓸지도, 어떻게 출판해야 하는 지도 몰랐다. 그러던 중 이 책을 발견했다.
이미지 출처: YES24
"책 한번 써봅시다"
'책 한번 써봅시다'. 이 책의 제목이다. 책, 그까짓 거 한번 써보자고 말하는 것 같다. 저자는 책을 통해 소통하는 사회를 꿈꾼다. 그러려면 저자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냐'고 저자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는 책 쓰기에 대한 막연함과 두려움이 담겨있다. 나 역시 책 쓰는 것이 전문성이 필요하고 막연하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책 쓰는 게 쉬워졌어요'라는 소리는 아니다. 그렇지만 책 제목처럼 저자는 보통 사람들이 책 쓰기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장애물을 허물어준다.
내가 상상하는 책 중심 사회는 책이 의사소통의 핵심 매체가 되는 사회다. 많은 저자들이 '지금, 여기'의 문제에 대해 책을 쓰고, 사람들이 그걸 읽고, 그 책의 의견을 보완하거나 거기에 반박하기 위해 다시 책을 쓰는 사회다. 이 사회에서는 포털뉴스 댓글창, 국민청원 게시판, 트위터, 나무위키가 아니라 책을 통해 의견을 나눈다. 이 사회는 생각이 퍼지는 속도보다는 생각의 깊이와 질을 따진다. - p.14
한편으로 나는 저자가 말했던 책 중심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나는 '어떤 사회에 살고 있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았다.
"영상이 중심인 세상에서의 책"
지금 사회의 중심은 '영상'이다. *2020년 미국에서는 약 1억 명이 TV를 통해 유튜브를 시청했다. 그들이 하루 소비하는 시청 시간은 4억 5천만 시간이었다. 이것마저도 TV에 한정된 시간이니 다른 플랫폼까지 합하면 그 수치는 훨씬 많을 것이다. **국내에선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 하루 평균 1~2시간 정도 영상을 소비한다. 어른들의 세상을 비추는 초등학생의 꿈은 이제 공무원에서 스트리머로 바뀌었다.
기술의 진보 덕분에 우리는 영상을 끊김 없이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한 영상을 보면 자신이 흥미를 느낄 만 한 다른 영상도 쉽게 접할 수도 있다. 이 추천 영상 때문에 나는 하루 몇 시간을 유튜브 시청에 소비하기도 한다.
반면, 영상에 비해 책은 친절하지 않다. 작가의 언어로 묘사된 장면을 독자가 상상해야 한다. 또한 영상에 비해 책은 느리다. 한 가지 주제를 몇백 장에 걸쳐 장황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모든 게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에서 책은 불리한 위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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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중심이 되는 사회"
쉽고 빠르고 편해지는 건 교통수단만이 아니다. 우리가 정보를 얻는 미디어도 그렇게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대로 가다 가는 사람들이 점점 바보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지식과 사고는 다르다. 지식은 아는 것이고 사고는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상은 사고력을 떨어뜨린다. 요즘은 양자물리학 같은 어려운 내용도 영상에서는 재밌는 밈을 통해 쉽게 전달된다. 편집자가 지식과 정보를 시청자에게 떠먹여 주는 수준이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기관은 점점 퇴화한다. 씹지 않으면 이빨과 턱이 퇴화하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으면 뇌도 퇴화할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하니 어디서 보고 들은 정보를 앵무새처럼 말하게 될 것이다. 사실 지금도 제 생각인 것 마냥 남의 생각을 읊는 사람들은 많다.
책은 독자의 능동적인 상상과 사고를 통해 완성된다. '어두운 밤, 공원'을 읽으면 머릿속에서 비어있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알아서 채우고 어두운 밤, 공원에 있는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영상은 가만히 두어도 다음 영상을 자동으로 재생하지만, 책은 자신이 다음 페이지를 읽어야만 한다. 독자가 책을 덮으면 작가는 말하기를 멈춘다. 그리고 독자는 일상생활을 하며 책에서 나온 내용을 반박하거나 공감하게 되는 등 한 번 더 책을 곱씹게 된다. 책이 영상보다 덜 친절하고 느리지만, 오히려 그러므로 더 창의적으로 상상하고, 깊이 생각할 수 있다.
책을 통해 소통하는 사회는 느리고 답답할 수 있지만, 한 주제에 대해 더 오래 생각해보고 서로에 대한 생각을 깊게 알 수 있는 세상일 것이다.
(⇒ 지금은 생각이 약간 바뀌었다. 책을 읽어도 결국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책이나 영상이나 다를 바가 없다.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좋은 게 아니라 책을 읽음으로써 상상력을 자극하고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나가는 게 좋은 것 같다. | 2021.02.28)
이미지 출처: 알라딘
"그래요, 한번 써봅시다"
자전거가 환경과 건강에 좋다고 해도 사람들은 자동차를 이용한다. 마찬가지로 책이 좋다고 해도 사람들은 계속 영상을 볼 것이다. 한국은 이미 영상 중심의 사회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 중심 사회가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사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더디더라도 책을 통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회 말이다. 누구나 드라마 같은 인생을 꿈꾸면서도 다른 사람의 일상을 보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아까운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책을 쓰는 것은 여전히 나의 목표 중 하나이다.
책 한번 써보자고요? 그래요. 한번 써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