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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말이 맞는 건지 모르겠는 환경보호
몇달 전 '씨스피라시(See와 Conspiracy의 합성어)' 해양 환경 보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해양 환경 오염의 주범은 플라스틱 빨대가 아니라 어업이다.
환경단체의 지속적인 호소와 기업의 CSR 캠페인 등으로 우리는 자연스레 플라스틱 빨대가 해양 환경 오염의 원인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플라스틱 빨대는 전체 플라스틱 중 4%에 지나지 않는다.
source: Ocean Conservancy
씨스피라시의 인터뷰를 보면 해양 환경단체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해양 환경단체들이 사실을 은폐하는 이유는 어업 회사의 후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를 본 이후로 환경단체나 기업, 사람들이 하고 있는 환경보호 활동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던 중 리디북스에서 노다지를 찾다가 이 책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이 책이 씨스피라시처럼 환경보호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깨뜨릴 것 같았다.
환경식민주의
브라질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산림을 개간하면 국제 사회, 환경단체들이 자연을 파괴한다며 비난한다. 선진국들이 지금과 같은 문명을 이루기 위해 같은 전철을 밟고 왔다는 사실, 그리고 탄소 배출량이나 에너지 사용량이 개발도상국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치 않은 것 같다.
선진국은 이미 발전했고 환경에 신경 쓸 여유가 있지만 개발도상국은 그렇지 않다. 먹고 사는 것 자체가 문제인데 환경을 신경 쓰는 여유로움이 어디서 나올까. 개발도상국의 경제, 기술적 발전에는 환경 파괴가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하지만 환경 보호에 힘을 쓸 수 있는 단계까지 가려면 국민들의 생활이 풍요로워져야 한다.
지구의 허파가 불타고 있다는 마크롱 대통령의 트윗을 보고 좋아요를 누르고 리트윗을 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원주민이 왜 화전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환경을 위한 자선파티를 열면서 1인당 탄소 배출이 일반 비행기를 훨씬 넘는 전용기를 타고 온다든지 하는 위선은 경제적 여유와 권력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배후에는 선진국의 원자재 수요와 다국적 기업의 공장 설립 등이 있다. 한때 다른 나라의 식민지였던 곳은 정치적으로는 벗어났어도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지배적인 구조를 띄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양상이 환경 파괴로 나타난다. '아마존이 불탄다'는 사실만 보면 브라질이 환경 악당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뒤에는 역시 선진국이 있다.
맬서스 주의
18세기 영국의 정치경제학자였던 토마스 맬서스는 '인구론'이라는 책을 썼다. 맬서스는 식량 공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인구 수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에 과잉 인구로 인한 식량 부족과 빈곤, 죄악의 발생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주장이 후대에도 계속 남아있다.
환경주의자들은 가난한 나라의 인프라 구축에 맹목적으로 반대한다. 공장을 설립하고 댐을 건설하는 것이 자연을 파괴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슈테판 레세니히의 책 제목 '우리 옆에는 노아의 홍수'처럼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의 환경 희생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개발도상국 국민들이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환경주의자들은 대신 개발도상국에 신재생 에너지를 도입하고자 한다. 움막에 종이컵을 달아두고 빛이 들어오게 하는 것으로 그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해서 누군가는 희생될 수 밖에 없다면 그것은 힘없는 나라의 힘없는 국민들일 것이다.
'친환경' 소재
'가난한 나라의 현실은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환경은 지켜야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는 개발도상국의 경제적 발전이 환경 파괴로 이어진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공장 설립이나 댐 건설이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석탄이나 숯을 사용하는 것이 환경에는 더 안좋다. 공장 설립을 하지 않으면 서민들의 삶은 농업, 목축업에 국한될 수 밖에 없는데 환경주의자들은 이를 위한 산림 개간이나 공장식 목축업에도 반대한다.
또한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려면 자연을 파괴해야 한다. 종이를 쓰려면 나무를 베어야하는 게 당연하다. '친환경'적이면 환경에 좋을 것이라는 편견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환경 보호를 실천하는 것이다.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친환경이다. 같은 예로 원자력은 탄소 배출이 제로이다. 석유 기업을 배후로 하는 환경단체나 정치인들이 원전 설립에 대해 반대하고 그들의 마케팅으로 인해 원자력은 나쁜 것이다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
환경적 휴머니즘
제니퍼 로렌스 주연인 영화 '마더'에서 묘사된 인간을 보면 인간은 지구에 잠시 초대된 손님일 뿐인 한편, 지구를 망치는 진상 손님이다. 이 영화만 해도 그렇고 멸종 위기 동물, 환경 파괴만 보면 내가 인간이면서도 인간을 혐오할 수 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이나 팩트풀니스 책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세상은 그렇게 나쁘게만 흘러가고 있지는 않다. 어느 정도의 성장을 이루고 나면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정체된다. 경제성장과 온실가스 배출의 탈동조화를 보면 '경제적 발전=환경파괴'라는 공식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이런 사실 말고도 잘못된 오해에 대한 많은 설명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공감했다. 환경을 지키는 노력이 꼭 다른 이들의 희생을 수반하여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책이나 이 서평에서 말하는 환경주의자들은 일반적인 환경주의자가 아니라 종말론적 환경주의자, 타인의 희생을 불가피한 것으로 여기는 환경주의자들을 말한다. 극단적인 환경주의자들은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막고 그들의 희생을 전제로 환경을 보호하려 한다.
사람이 자연과 함께 계속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의 희생이 불가피한 걸까? 경제적, 기술적 발전이 자연의 파괴로 이루어지는 것은 맞다고 본다. 책에서는 공장을 설립하고, 댐을 건설하고, 원자력을 사용하는 등의 기술이 신재생 에너지를 사용하고 농업과 목축업에 의존한 삶보다 환경친화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자연 파괴는 필연적이다. 다만 '환경적 휴머니즘', 즉 사람을 풍요롭게 하면서도 자연을 생각하려면 환경에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런 것들이 바로 발전된 기술이다 (신재생 에너지는 아니다).
책은 발전된 기술이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듯한 기술 만능주의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건 독자가 알아서 잘 걸러들어야할 것 같다. 개발은 자연파괴로 이어지는 것이 맞고 그나마 자연에 덜 해를 끼치려면 효율적인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스스로 판단하기
나는 환경 보호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매스컴이나 주변 지인들이 말하는 환경 보호 지식에만 기대어 왔다. 씨스피라시를 처음 봤을 때도 내가 잘못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었다. 이 책에 의하면 충격은 무지로부터 온다는데, 나는 환경보호에 대해 정말로 무지했었다.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못된 통념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은 진실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는 사실의 방증인 것 같다. 누군가는 환경을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자기 위안으로 삼고, 기업은 그것을 브랜딩에 사용한다.
만약 이미 환경 보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면 이런 행동이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이 아니라 '위선'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내지 위선을 바로잡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기후 변화 반대 환경주의자, 기술 만능주의자와 같은 오명을 뒤집어 씌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보호를 위해 실질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주고자 했다.
친환경 소재보다는 인공 소재를 사용하고 원전 설립에 찬성하고 방목형보다는 공장식 목축업으로 길러진 고기를 소비하는 등 이 책을 읽으면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환경 보호를 실천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씨스피라시에서 느꼈던 것처럼 어느 한 쪽의 입장을 맹신하기 보다는 양쪽의 입장을 모두 들어보고 스스로의 판단 하에 차선을 선택하는 게 가장 옳은 방식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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