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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공부 - 루이스 라무르

published
2022/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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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앞에 길이 있기를!
장르
에세이
글쓰기
author
루이스 라무르
출처: yes24
루이스 라무르는 한국에서는 유명하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영화화된 여러 소설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이 책은 그의 말을 빌리면 ‘지식을 찾는 남자의 탐험 이야기'이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공부해왔는지 적혀있다.
독서와 토론을 좋아하는 가정에서 자란 그는 고등학교 교육에 회의심을 갖고 자퇴한다. 그리고 가난한 형편 때문에 젊은 시절부터 *호보가 되어 많은 나라를 돌아다닌다. 그는 노동을 하면서도 늘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호보: 떠돌이 노동자
새로운 곳에 들를 때마다 그곳 토박이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책을 통해 역사를 배우며 지식을 늘려나갔다. 그가 탐욕스럽게 책을 읽은 것은 소설가가 되기 위해 공부한 것이 아니라 단지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좋아하고, 늘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재능이란 그저 기나긴 인내심일 뿐이다” 이 말은 부분적으로 맞다. 나는 작가로 글을 쓰기 시작한 몇 년 동안 나와 비슷한 야망이 있는 젊은 남녀를 많이 만났다. 그들이 글을 아주 잘 쓰는 데다 표현력과 아이디어도 풍부해 종종 부러웠지만, 당시 내가 알고 지내던 열댓 명 중에 딱 한 명만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는 ‘선데이' 신문의 편집자가 됐다. 나머지는 모두 도중에 실패했다. 그들은 계속된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했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플로베르가 말한 기나긴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했다. - 141p
그는 형편이 어려웠지만 잡지에 계속 서평을 냈고, 소설을 쓰고 출판사에 투고했다. 그의 주변에도 작가가 되려는 사람이 여럿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서도 여전히 작가의 꿈을 가지고 소설을 쓰는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었다고 한다.
꿈을 이루거나 성공하려면 하루 이틀만 열심히 해서 될 게 아니라 낙수물이 바위를 뚫듯이 매일매일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작가 역시 호보 생활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단편 소설, 시를 썼고 책을 읽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누구나 루이스 라무르처럼 공부할 수는 없겠지만(작가 역시 자신의 방법으로 공부하길 원치 않는다. 누구나 자신만의 공부 방법이 있고 스스로 그것을 찾아야 한다.) 무언가를 ‘꾸준히 노력하면 된다'는 사실만큼은 명확한 것 같다.
그의 이야기는 27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장의 구성은 비슷하다. 어떤 곳을 여행했고, 어떤 일을 겪었으며, 어떤 책을 읽었고, 무엇을 느꼈는지 등.
읽은 책은 매우 구체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그는 호보 생활을 하면서도 100권 이상의 책을 읽었는데, 독서에 대한 사람들의 핑계에 일침을 날리기도 한다. ‘시간이 없어 책을 읽지 못한다는 말은 핑계이다. 책을 읽을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맞는 말이다. 출퇴근할 때, 사람들을 기다릴 때, 밥을 먹을 때, 자기 전 등 책을 읽을 시간을 얼마든지 있다.
사실 그가 무엇을 읽었는지는 그렇게 궁금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제일 재밌는 부분은 작가가 고생한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술집에서 몸싸움에 휘말린 이야기(작가는 권투 선수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여행을 하면서 무술 고수들에게 싸움의 기술을 배웠고 이때문에 거리의 싸움은 쉽게 이길 수 있었다), 물 없이 사막을 횡단한 이야기(몇 킬로미터 씩 떨어진 샘물들로 겨우 갈증을 해소하다가 마침내 술집을 발견해 시원하게 드링킹하는 장면에서는 안도감, 시원한 느낌 마저 들었다), 광산에서 몇 주간 고생해서 번 돈을 고속버스에서 도둑 맞은 이야기 등이 있다.
또한, 그가 여행하며 만났던 토박이 주민들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인디언과 백인들의 전투 이야기도 나온다. 그 이야기는 인디언들의 손에 길러진 백인 노인의 입에서 나온다. 그 노인은 어린 시절 인디언들의 관행에 따라 전투를 지켜보러 가게 된다. 절벽에 숨어 백인 7명과 인디언 몇백 명의 전투를 목격한다. 백인들은 소총을 들고 몇날을 버텨보지만 결국 모두 전사한다. 인디언들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은 사상자가 있었지만 결국 이겼고 그 백인들을 지금껏 만난 백인들 중 가장 용감한 백인들이었다고 말했다.
같은 곳에서 일하게 된 그 노인과 함께 불 옆에서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 생생했다. 어두운 밤 타닥거리는 타며 장작 소리, 귀뚜라미 소리, 약간 선선한 바람, 따뜻한 담요의 아늑함이 떠올랐다. 자기 전 독서등만 켜놓고 보면 이 장면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작가의 뇌는 마법사의 모자와 같다. 거기서 뭔가 꺼내려면 먼저 뭔가를 집어넣어야 한다. - 90p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생동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생각해보았다. 1940~50년대의 시대상,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싸우고 고생하며 살아남은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운 것도 있다. 하지만 제일 큰 요인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묘사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그는 굶주림에 대해 아는 작가는 별로 없다며, 진짜 굶주렸을 때는 허겁지겁 먹지 않고 음식의 맛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먹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굶주리다가 먹으면 위장이 줄어서 많이 먹지도 못하고 오히려 둘째, 셋째날에 미친듯이 먹어댄다며 굶주림에 대해 정확히 묘사했다. 경험에 기반해 정확히 묘사하는 것이 독자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모험과 이야기에 더 빠져들게 하는 것 같다.
신장과 파미르 고원에서 타클라마칸 사막과 티베트의 일부 지역으로 가는 길에 사람들을 만나면 종종 “그대 앞에 길이 있기를!”이라고 인사한다. 그곳은 눈사태와 낙석과 지반 함몰이 빈번한 땅이다. 도로는 임시로 만들어졌고, 다리는 밧줄로 엮어 놓은 곳이 태반이다. 그래서 그렇게 인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길이 막히지 않았기를, 열려 있기를 바란다. 나도 독자들에게 이렇게 작별 인사를 건네겠다. “그대 앞에 길이 있기를!”
그의 일생은 일반적이지 않다. 독서와 토론을 좋아하는 가정에서 자랐고, 호보가 되어 이곳저곳 떠돌아 다니며 노숙하기도 하고 히치하이킹도 하고 그러면서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고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작가가 되기 위해 계속해서 투고를 했고 결국 작가로 성공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고, 결혼하고, 은퇴하여 노후자금으로 여생을 보내는 것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은 일상적인 일생이다. 나 역시도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했다. 나는 앞으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지금보다 미래가 항상 더 낫기를 바랐다.
하지만 길이란 게 모두 똑같지 않듯이 작가의 일생을 보면 사람의 인생도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것이구나 깨닫는다. 가난과 고통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올 수 있다. 루이스 라무르는 그런 순간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작가의 길을 걸었고 결국 성공했다. 가난하든 떠돌이든 뭐든 간에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고 나름대로 행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