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배가 고프지 않은 데도 계속 무언가를 먹게 되고, 궁금하지 않은 데도 계속 영상을 보게 된다. ‘~하게 된다'는 의미는 내 의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누군가 나에게 강요하는 게 아니니 어폐가 있어보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들이 사실 내 의지로 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음식 중독
다이어트는 의지의 문제다? 그렇지 않다.
치킨, 피자, 마라탕, 떡볶이 같은 대부분의 배달 음식은 자극적이고 당과 정제탄수화물의 비율이 높다. 단순당과 정제탄수화물은 빠른 시간 안에 몸 속에서 포도당으로 전환된다. 혈액 속의 포도당, 즉 혈당이 높아지면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된다.
인슐린은 간이 포도당을 생산하는 것을 막고 혈액의 포도당을 세포 속에 저장한다. 남은 포도당은 간과 근육에서는 글리코겐으로, 지방조직에는 중성지방으로 저장된다. 사용한 에너지보다 잉여 에너지가 많으면 지방으로 전환되면서 살이 찐다. (게리 타우브스 - <왜 우리는 살찌는가>)
살이 찌는 것 까지는 괜찮다. 그런데 문제는 식사량의 조절이 안된다는 것이다. 왜일까? 일단 자극적인 음식, 달고 짜고 매운 음식은 도파민을 분비 시켜서 즉각적으로 행복함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대부분 스트레스를 받고 나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먹고 난 후 배부름에도 불구하고 도파민이 떨어지면 또 먹고 또 먹고.
포만감 이상의 과식은 물리적 허기보다는 심리적 허기가 주는 영향이 크다. 가끔의 포식은 있을 수 있지만 습관적으로 폭식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없고 자신이 괴물처럼 느껴진다. 이때부터는 괴로워하면서도 먹는다. 식사는 매일 하는 것이니 먹는 게 괴로워지면 삶 자체가 괴로워진다.
이는 건강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보통 식사 후 30분이면 혈당이 증가한다. 혈당이 증가하면 인슐린이 분비되는데 이런 식습관이 반복될 수록 인슐린의 작용 능력이 떨어지면서 점점 더 많은 인슐린을 필요로 하고 인슐린의 본래 기능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를 인슐린 저항성이 증가한다고 표현한다.
인슐린 저항성이 증가하면 간이 포도당을 생산하는 것을 멈추지 않게 되고 포도당을 세포에 저장하는 기능이 떨어져 혈당이 떨어지지 않는다. 혈당이 떨어지지 않으니 더 많은 인슐린을 필요로 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살이 찐 사람들이 몸에 힘이 없어 운동을 못하겠다고 하는 모습을 종종 보곤 했는데, 이는 게으른 게 아니라 먹은 음식을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기능에 장애가 생기면서 실제로 힘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중독되는 걸까? 기업이 달고 맵고 자극적인 음식들로 사람들을 중독시키기 때문이다.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본 음식 중독에 걸린 사람들 중 대부분은 액상과당 음료(바닐라 라떼, 콜라, 과일 쥬스 등)를 마신다. 치킨, 짜장면 배달음식에 비하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양에 비해 칼로리도 높고, 단순당이라 빠르게 포도당으로 전환된다. 또, 유의미한 영양성분이 없어 오히려 마시면 마실 수록 더 허기를 느끼게 한다.
제로 콜라도 사실은 괜찮지 않다고 한다. 제로 콜라는 혈당을 증가시키지 않아 일반 액상과당 음료보다는 괜찮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주 성분인 인공감미료(수크랄로스, 아스파탐 등) 등에 의해 장내 미생물총이 바뀔 수도 있다. 이로 인해 당뇨병, 고혈압이 유발된다.
음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도 있다.
식품 산업은 인공 감미료를 통해 강한 자극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당이 들어있는 음료수 같은 경우는 제로 칼로리여도 강한 단맛으로 도파민을 자극하고 허기는 지게 하면서 포만감은 불러일으키지 않으니 결국 더 많은 음식을 갈구하게 만든다. 자극적인 음식을 먹을 수록 음식을 더 찾게 된다.
현대의 소비주의 문화는 과식을 불러일으킨다. 미디어는 식품 소비를 자극한다. 특히 먹방. 음식 광고. 이것도 먹어보고 저것도 먹어보고, 영양 과잉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맛있는 것’을 계속 먹는다. 자본주의 사회는 어차피 행복하려고 사는 인생, 맛있는 걸 먹으라고 하면서도 날씬하고 건강한 몸매를 강조한다.
왜 이렇게 앞뒤가 다를까? 돈 때문에 그렇다. 돈. 사람들이 맛있는 걸 먹어야 음식 산업이 돈을 벌고 외모에 관심을 가져야 뷰티 산업이 돈을 벌기 때문이다.
어플리케이션 중독
음식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어플리케이션도 문제이다.
예전에 읽었던 니르 이얄의 <Hooked>는 사람들을 어떻게 어플리케이션 서비스에 중독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설명한다. 자신도 찔리는지 책 말미에 기업의 도덕성을 생각하고, 자신의 서비스가 고객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고민해보라고 써놨지만 돈이 전부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의미 없는 잔소리다. 웃긴 건 니르 이얄 본인도 앱에 중독되서 방해받지 않고 일에 몰입하는 방법인 <초집중>이라는 책을 썼다. 흥. 양심적인 위선자 같으니라고.
아무튼 Hooked에 나온 중독시키는 방법을 간단히 설명하면 ‘고객을 파블로프의 개로 만들라'는 것이다. 앱을 사용하는 계기, 즉 어떤 신호를 주고 고객이 앱에서 특정한 행동을 하면 그에 따른 보상을 준다.
계기 - 행동 - 보상 - 투자.
책 내용을 요약하면 이 네 단계로 고객을 앱에 후킹시킬 수 있다.
유튜브를 예를 들어보자. 철수는 할 게 없다. 커뮤니티나 누군가와의 채팅에서 재미있는 영상을 공유 받았다(계기). 영상을 보았다(행동). 재밌었다, 즐거움을 느꼈다(보상). 이 채널에서 비슷한 다른 콘텐츠를 보기 위해 구독을 누른다(투자).
유튜브는 추천 알고리즘으로 개인의 관심사에 맞는 콘텐츠를 끊임없이 추천해준다. 한 번 보기 시작하면 30분, 한 시간, 세 시간이 지난다. 유튜브를 보면서 치킨을 먹는다? 중독 자본주의 노예의 끝판왕이다. 비하하는 게 아니고 내가 그렇다.
<초예측 부의 미래>라는 책에서는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 IT 기업 구글,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등의 앞 글자만 따서 GAFA라고 부른다. 각 기업에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이미지가 있다고 한다. 구글을 신, 애플을 섹스, 페이스북을 사랑, 아마존을 소비라고 말한다.
우리는 신 대신에 구글에게 질문하고 이성에게 잘보이기 위해 애플의 제품을 사용하며 페이스북을 통해 관심과 사랑을 받길 원하고 아마존에서 소비 욕구를 해소한다.
시장은 인간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다. 책의 비유에 따르면 GAFA는 아예 인간의 욕망 그 자체가 되었다. 우리는 일상의 많은 부분을 GAFA에게 의존하고 있고 GAFA가 없으면 살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통제 가능한 삶
어딘가에 중독된 삶은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느낌이다. 자본주의 사회 사람들은 회사를 위해 돈을 벌고 회사를 위해 돈을 쓴다. 내가 나를 위해 소비하는 게 맞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다.
회의주의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정말 자신이 소비하고 선택하는 것 중에서 광고와 리뷰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하나라도 있을까. 정말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타인은 지옥이다. 매순간 순간을 사회와 타인의 눈치를 보며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지옥.
너무 가버렸다. 지옥까지는 아니다. 솔직히 타락한 공산주의보다는 타락한 자본주의에서 사는 게 더 행복할 것이다. 적어도 내가 자유로운 것처럼 느끼게끔은 해주니까. 자본주의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타락한 자본주의가 나쁘다. 돈을 위해 인간을 중독시키고 건강과 행복을 앗아가는 사회의 일면이 나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당한 소비는 행복을 주지만 적당히 소비하게 놔두지 않는다. 계속 보여주고 허기를 느끼게 하고 욕망을 불러 일으키고 결국 소비하게 된다. ‘내가 이걸 왜 계속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 계속 먹고 있지? 왜 계속 보고 있지? 어떻게든 절제해서 벗어났다가도 문득 정신을 차리면 다시 되돌아와있다. 그래서 가끔은 아무 것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 스마트폰도 울리지 않고, 자극적인 음식도 없고, 고개 돌리면 보이는 광고도 없는 것으로..
치료는 결국 당사자의 몫
중독으로 돈을 버는 중독 자본주의. 중독은 개인의 문제일까 사회의 문제일까? 중독되는 것은 사회의 문제, 치료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다. 중독시킨 건 사회인데 치료는 왜 개인의 문제인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치료를 사회의 문제로 돌려봤자 해결되는 게 없기 때문이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에서 나온 내용이다. 어떤 수행자가 안좋은 과거를 계속 떠올리면서 괴로워하자 스님이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 폭력 조직에 납치되어서 마약을 주입받고 노예가 되었다가 경찰에 의해 풀려났어요. 풀려나기 전 마약을 했던 건 누구 잘못이에요?’
‘폭력 조직이요'
‘그런데 이 사람이 풀려난 이후에 중독에 의해서 마약을 했어요. 그럼 이때는 누구 잘못이에요?’
‘…그 사람 잘못이요’.
피해자는 너무나 억울한 상황이겠지만 현실은 그렇다. 그 병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은 것이지만 결국은 자신이 해결해야할 문제이다. 다른 사람이나 사회를 탓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발에 채이는 광고, 끊임 없는 스마트폰 알림, 자극적인 음식들을 줄곧 피하면서 살 수는 없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이점을 누리면서 말이다. 그게 싫으면 중이 절을 떠나듯 자연인처럼 산 속으로 떠나면 된다. 솔직히 그러기는 싫다. 이게 바로 욕심인가 보다.
왜, 어떻게 중독되는지도 공부하고 배달 앱이랑 유튜브도 지우고 도파민 디톡스 일지도 작성해보고 여러 방법을 시도해봤다. 그런데도 유지가 잘 안된다. 더 건강한 대체재가 없기 때문일까. 혹시 자기도 이렇게 중독된 경험이 있거나 극복해봤다면 알려주시길..